Escalator over the Hill
'음악을 재료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하니 얼른 와 닿질 않는다.
예술이 갖는 가장 중요한 성격 중 하나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이라는 것인데, 하물며
이미 하나의 원형을 가진 개성 강한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서 작업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 문혜자의 음악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은 이미 단순히 음악
애호가의 취향이 아닌 준 전문가의 수준으로, 그녀의 30여년의 작업을 보면 국악에서 클래
식으로, 다시 재즈로 흐르는 맥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테마인 ‘ Escalator over the Hill’은 음악의 여러장르에서도 매우 난해하고
실험적인 대표적인 아방가르드 음악 중 하나이다. 왜 굳이 어렵고 까다로운 음악을 듣느냐
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이미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한 그녀로서는 당연한 선택 일 수
있다.
아방가르드 음악에서 영감을 받아 창조된 작품들을 굳이 비유를 하자면, 향이 아주 강한 이
국적인 향료를 재료로 삼아 한 요리, 독특한 향미를 가진 음식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낯설기 때문에 쉽게 입에 넣지 않지만, 한번 맛을 보면 독특한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문혜자의 작품을 보면 화면 가득히 넘실대는 에너지, 폭발적인 동시에 매우 이성적인 ‘에너
지’가 있다. 이는 작업과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편하게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고 항상 긴장한 상태로 음악을 취한다. ‘Escalator over the Hill’의 기
계음처럼 반복되는 27분의 음악을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으면서, 감성뿐만 아니라 이성적으
로도 완벽하게 이해하고 온몸으로 소화하게 되면서 그녀의 붓과 옴이 하나로 움직이는, 자
동기술적으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지독하게 감정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제어가 있는 작업이 가능한 것이다. 다시말해서 어떠한 심미적인 선입관이나 기성의 기술
적인 표현을 떠나서 일종의 무의식상태에서 들이마신 것을 소화하면서 동시에 쏟아 붓는
듯이 그리기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그림을 통해서 음악과 색채를 자신만의 심연의 음역으로 다양하게 변주하여 잠
자던 뇌의 그곳을 깨워 새로운 명상으로 이끌어주는 독특한 힘이 있다.
‘Escalator over the Hill’에서 시각으로 시작해서 다시 마음의 귀로 전해지는 깊은 색채의
소리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오형주/갤러리 썬앤문 큐레이터